도둑님들

2019. 11. 16. 11:44일상의 기록/포토 에세이

2019년 11월 16일, 금요일 - 서택사랑테마공원 산책



어릴 적 저 풀을 도둑놈이라 했다. 그런데 왜 도둑놈일까? 사진을 다시 보다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왜일까? 왜 도둑놈일까? 갑자기 궁금하다. 요즘 아이들은 저 풀의 이름이 '도둑놈'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아마도 모를 거다. 이유는 도둑놈 풀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촌놈이다. 바다가 있는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가을이면 수확을 끝낸 논과 밭에서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 보면 겨울 짧은 해는 어느새 저물어 있고, 굴뚝에서 모락모락 연기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서여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는 것을 알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집으로 들어가면 어머니의 야단이 시작된다. 지금처럼 전기 압력 밥솥도 없었고, 가스레인지도 없었다. 가마솥에는 여물을 끓이고 그 옆에 백솥에 밥을 지었다. 백솥에 밥을 할 때는 불 조절이 관건이다. 당시 시골 아낙의 삶은 힘들다. 하루 종일 고된 농사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식구들의 저녁을 준비하느라 정신없다.  손 하나가 아쉬운데 친구들과 실컷 뛰어놀고 집에 들어오면서 하는 말이 '엄마 배고파 밥 주세요!'라고 말을 내뱉는다.


어머니로부터 잔소리를 듣는 건 당연지사다. 흥부가 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조금 고약한 어머니를 만났더라면 밥주걱에 뺨을 내어주어야 했을 것이다. 잔소리로 끝난 것에 감사해야 했다. 밥상이 들어오고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어머니의 야단은 다시 시작이다. 지금이나 당시나 식탁에 앉을 때 씻지 않으면 야단을 듣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 시절에 비하면 환경이 너무 좋지만 아이들은 잘 씻지 않는다. 부랴부랴 손을 씻고 들어왔지만 또 어머니의 야단이다. 이번에는 이유가 뭘까? 이번에는 어머니께 대어 들어 본다.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덤빈 것은 아니다. 이유는 바로 '도둑놈' 때문이다.



녀석들이 생존을 위해 번식을 위해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바지 구석구석에 달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처럼 좋은 원단을 가진 옷도 아니고 털이 보슬보슬한 옷들이 많아서 도둑놈이 달라붙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바로 이 녀석들 때문이었다. 옷에 도둑놈을 잔뜩 붙여 왔다고 야단을 들었다. 그것이 일상이었다. 때문에 저 풀의 이름이 '도둑놈'이라고 알고 있다. 


인생은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라 했던가? 그때로부터 40년의 세월이 지나고 당시 어머니 나이가 되어서야 다시 도둑놈을 떠 올리게 되었다. 녀석들은 오랜 시간 그대로 있었건만 녀석들을 보지 못했다. 잊고 살았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살았다. 불혹을 넘기고 지천명을 앞두고서야 멈추는 법을 배웠다. 혜민의 책 제목처럼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을 추억을 떠 올렸다.



궁금했던 '도둑놈'이란 풀의 이름을 검색해 본다. 당시는 구전으로 이름이 '도둑놈'이라는 것만 알았지만 이제는 쉽게 그 유래까지도 찾아볼 수 있다.


도둑놈의 갈고리는 꼬투리열매 끝에 갈고리 같은 가시가 있어 옷깃에 잘 붙어서 후손을 멀리까지 퍼뜨린다. 도둑놈의 갈고리는 이런 생존전략을 쓴다는 점에서 이름이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도둑놈들은 담을 직접 넘어서 물건을 훔쳐 나오기도 하지만, 낚싯대처럼 긴 장대를 사용해서 끝에 낚싯바늘 같은 갈고리를 달고 담 너머에서 집안의 물건을 끌어당겨 훔쳐내기도 한다. 이때 쓰는 낚싯바늘 같은 갈고리가 도둑놈의 갈고리 열매 끝에 달렸다고 해서 이름을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도둑놈의 갈고리는 열매의 방이 두 칸으로 나뉘어 있는데, 윗부분은 편평하고 아랫부분이 둥글어서 안경이나 선글라스의 모양을 닮았다. 열매 끝에 바늘처럼 끝이 꼬부라진 가시가 달려 있어, 가을철 열매가 익을 때쯤 물건을 훔쳐서 풀밭으로 도망치는 도둑놈의 바짓가랑이에 이 식물의 열매가 달라붙기 때문에, 바짓가랑이를 잘 살피면 누가 도둑인지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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